실험실의 비글들,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정부윤 운영국장과의 인터뷰
-국내 유일 실험동물 복지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
정부윤 운영국장과의 인터뷰
비글구조네트워크는 2015년 7월 실험비글 4마리 구조를 시작으로 국내 동물실험의 실태를 국내 최초로 세상에 알리면서 출범한 동물복지단체이다. 이후 매년 실험비글 및 안락사 직전에 처한 유기비글을 구조하면서 불법 동물실험과 학대를 고발, 관련법 개정에 힘을 쏟는 동시에 동물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노력해 왔다. 슈요니는 비구협의 창립부터 그 역사를 함께 해 온 정부윤 운영국장과 이메일 서신을 통해 우리가 잘 몰라서 간과했을지도 모르는 실험용 동물의 삶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가 생겨날 무렵, 제가 오랜 시간 봉사활동을 했던 한 사설보호소에는 구조 후 입양을 가지 못하고 보호소에서 살고 있던 늙은 실험비글이 다섯 마리 있었어요. 실험 동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매우 저조했고 저조차도 실험동물의 처우나 복지가 어떤지 그때는 잘 몰랐어요. 이 비글들은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는데, 모두에게 잊혀진 채 보호소에서 10년 가까이 살고 있었어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죠. 실험실을 벗어난 곳이 좁은 보호소 견사니까요. 이 아이들 사연을 듣고 지금의 비구협 유영재 대표님이 비글들의 입양을 추진했고 건강이 좋지 않았던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으로 입양되어 견생의 마지막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었어요.” 정부윤 운영국장이 비구협과 함께 실험비글 구조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이다.
실험비글들은 각각의 사연이 특별하다보니 저마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름이와 다운이, 고운이의 이야기는 특별하다. 바람이 유난히 매섭던 어느 추운 1월의 겨울 날 인적이 드문 길모퉁이에서 비구협의 활동가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대기중이었다. 바로 조금 후에 비밀리에 실험 종료된 비글 세 마리를 인계받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해당 실험기관의 연구원들은 6년 동안 정든 비글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고 싶어서 연구소측에 입양을 건의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지적 재산 유출이나 비난에 대한 우려, 비용 등의 문제로 연구소 입장에서는 그동안 해온대로 실험 종료와 동시에 안락사 처리하는 것이 훨씬 편리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실험실 밖의 세상은 한번도 구경하지 못한 채 인간을 위해 평생을 희생을 강요 당해 온 생명이 그렇게 또 당연하게 사라지고 잊혀질 뻔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실종"을 가장하여 첩보 작전을 수행하듯 극적으로 비글들을 전달한 용감한 몇몇의 연구진과 미리 철저히 준비한 비구협의 협동 작전으로 이 세 마리의 비글은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졌다.


한 해 안락사에 처해지는 약 1만5000마리의 비글 중 이렇게 구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7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실험에 사용된 비글은 15만 마리인데 그중 살아서 실험실 밖을 나간 건 21 마리뿐이다.
실험견을 구조하고 싶어 연구원들이 미리 비구협으로 연락을 하여도 실험기관장이나 지도교수들의 반대로 공동 작전 10건 중 9건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동물실험은 수행하는 연구자에게도, 해당 동물에게도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데 제2의 기회를 주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구조활동이나 입양 또한 음지에서 몰래 진행을 해야 하는게 다반사였어요. 그 후 2018년에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건강상 이상이 없는 동물은 입양(분양) 할 수 있다는 옵션이 생겨서 지금은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구조활동이 참 쉽지 않았어요.”
실습에 이용되면서도 새로운 실험비글 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교배와 출산을 반복해 온 이 세 마리의 아이들이 알고 있던 세상은 발가락을 벌려야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뜬장과 차가운 실험대와 알콜 냄새, 그리고 어떤 고통이 주어져도 순응하고 견디던 인내의 시간뿐이었다. 사람 손이 닿으면 얼음이라도 된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온순한 표정이 되었다. 켄넬 문이 활짝 열리자, 머뭇거리던 아름, 다운, 고운이는 이내 햇살이 반사되어 눈부시도록 새하얗게 빛나는 눈 위로, 그 미지의 세계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이제야 허락된 자유라는 세상을 새롭게 알아갈 것이다.
한편 그 무렵, 서울대 연구실에서 복제견으로 태어난 메이, 천왕이와 페브는 5년간 훌륭히 검역탐지견으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은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후, 인간을 위해 평생을 봉사해 온 그들에게 되돌아 온 것은 국가 사역에 대한 예우는 커녕 그들이 처음 태어났던 바로 그 실험실로의 복귀였다. “알려진 바로는 복제견인 메이에게 '번식성'과 '생리학적 정상성'을 확인하는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번식성을 확인한다고 과도하게 정액 채취를 해 성기가 기형적인 모습을 띤 것으로 유추했어요. 생리학적 정상성을 시험하겠다고 최대한 굶긴 것 같아요, 얼마나 밥을 안 줘야 버틸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연구소 감사를 피해 잠시 검역센터에 맡겨진 메이는 갈비뼈가 들어날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몸에 힘겹게 비틀대며 걸으면서도 사료를 주자 허겁지겁 먹다가 코피를 사방에 흩뿌렸다. 가끔은 사육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청소솔이나 밥그릇으로 머리를 때리기도, 케이지 안으로 내던지기도 또는 청소용 고압수를 몸에 뿌려기도 했지만 소리 한 번 제대로 낼 수 없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얼마 가지 않아 메이는 “원인 모를 체중 감소"로 폐사하였고 심각한 학대 정황에 분노한 비글구조네트워크는 국민청원을 올리고 서울대 연구팀을 검찰에 고발하여 겨우 목숨을 부지한 천왕이와 페브를 실험실에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메이를 학대했던 관계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연구팀 소속 사육사 개인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전가할 뿐이었다. “메이의 희생으로 이후 검역탐지견에 대한 훈령이 개정되어 사역견이 동물실험에 동원되는 것이 금지 되었습니다. 메이가 남은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 후 천왕이와 페브을 일반 가정으로 보내기 위해 여러 동물보호단체들이 노력했고 대대적인 보도로 입양신청자들도 줄을 섰지만 결국 검역본부는 “건강상태의 악화,” “윗선의 거부"를 이유로 입양도, 이관도 거절했고 두마리의 비글은 아직도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실험동물에 대한 대중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어요.” 정부윤 운영국장은 무조건적으로 “동물실험은 잔인하다”, “실험동물이 불쌍하다” 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동물실험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험동물들이 불쌍하다고 얘기하면서 동물실험 한 제품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소비하고 있다면 아이러니 하죠.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영위하고 있는 많은 생활용품들이 동물실험의 산물인데요.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 샴푸, 린스, 바디워시, 치약, 물티슈, 화장품, 쉐이빙크림, 의약품 중 대다수가 동물실험을 거쳤어요.”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사회 변화를 일으키기 힘들죠. 소비자들이 점차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들을 사용하고,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서 기업들이 대체 방법을 이용한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 되어야 동물실험이 점차 줄어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 되어요.” 대한민국, 한 나라에서만 매년 300여곳의 동물실험 기관에서 1만마리가 넘는 실험비글들이, 약 400만 마리의 실험동물이 차가운 실험대에서 죽어 나간다. 전세계적으로는 매년 1억9천여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희생당한다.
4월 24일 세계 실험동물의 날을 앞두고 비구협 쉼터에 21 마리의 실험비글들이 새로 입소했다. 이런 대규모 구조는 흔치 않기에 이들은 매우 운이 좋은 1%에 속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고 천성이 온순하여 고통을 느껴도 반항하지 않기에 실험견으로 쓰인다는 비글. 멀쩡한 안구를 적출당한 뒤 보이지도 않는 인공 눈을 하고서도, 1년 내내 농약을 먹고 잔혹한 실험을 견디면서도, 화장품의 독성연구를 위해 피부가 벗겨져도 사람이 그저 좋아서 매번 꼬리를 치며 연구원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같은 연구실 출신이어도 케이지 안에 따로 격리되어 혼자서만 생활했던 이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지만 또한 신기하고 희망차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른 비글 친구들과 어울려 장난치는 재미를,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기쁨을, 흙에 코를 박고 맡는 싱그러운 풀내음을, 계절따라 옷을 바꿔 입는 자연을, 산책하다 마주하는 애정어린 사람의 눈빛을 그리고 손길을 배워가길 바란다. 그리고 너무 오랜 시간동안 쉼터에 남겨져 있지 않길 바란다.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넓은 운동장보다는 조금 좁더라도 사람과 더불어 살며 교감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최고의 행복일 것이리라.
비구협은 정부 지원금이나 보조금 없이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단체이다보니, 자금 부족이 늘 큰 어려움이다. 현재 비구협은 800마리가 넘는 동물들을 보살피고 있는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꾸준하게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동물들이 많은데, 매달 병원비가 부족해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할 때가 가장 속상하다. 매일 근무하는 활동가들과 근로자들이 있지만, 수백 마리 동물들을 하나하나 신경써서 돌보기엔 역부족이라 봉사자들의 손길도 절실하다. 해외에서는 실험견의 입양이 어느정도 자리 잡은 상태이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실험기관의 비협조, 실험견에 대한 편견이나 주거형태 등의 이유로 여건이 좋지 못하다. 사람이 너무 좋아, 사람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도 사람을 따르는 실험비글들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사랑과 보살핌을 줄 가족일 것이다. 반려동물의 입양을 고려하고 있다면, 임시보호나 입양 경험이 없어도 책임감과 애정을 가진 보호자라면 이미 사회화 과정을 마친 실험비글들이 비구협의 쉼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동물실험 반대 기업인 슈요니는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피부도 자연도 지속 가능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고 있는 실험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힘써 온 비글구조네트워크의 뜻깊은 활동에 감명받아 2021년 2월 이후 꾸준히 정기후원 및 일시후원을 해오고 있다. 이번 기획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동물실험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고, 더 나아가 인간과 동물과 환경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길 희망한다.
에디터: 김아미
사진: 비글구조네트워크 제공 (출처: 비글구조네트워크 네이버 카페)